먼저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서운한 일이 생기면 늘 내가 풀어야 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노력이 어느 순간 피로와 서운함으로 바뀌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언제부터 나만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습니다.
보고 싶으면 내가 먼저 연락하면 되고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다투고 난 뒤에도 내가 먼저 연락합니다.
계속 어색하게 지내는 것보다 먼저 말을 거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먼저 연락할까?
내가 약속을 잡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는 만남이 생길까?
한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까지 다르게 보입니다.
내가 좋아서 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내가 하지 않으면 관계가 멈출 것 같은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관계가 점점 피곤해지는 순간입니다.

하나. 좋아서 하던 일이 의무가 될 때
사람마다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연락을 자주 하고
누군가는 만나면 잘하지만 평소에는 연락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 연락하는지를 횟수로 정확하게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한 사람이 계속 관계를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나?
만날 날짜를 정하는 것도 나?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대화를 꺼내는 것도 늘 나라면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일이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조금 더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나도 가끔은 상대가 먼저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계속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한 번쯤 저쪽에서 문을 열어주는 경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애쓰는 사람은 점점 외로워집니다.
혼자가 아닌 관계 안에서 혼자 관계를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둘. 이해가 많아질수록 서운함도 쌓인다.
상대에게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
쉽게 화내기 어렵습니다.
요즘 일이 바쁘니까?
원래 표현을 잘 못하니까?
사람한테 먼저 연락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대부분의 행동을 이해할 이유가 생깁니다.
이해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상대를 이해하는 동안 내 마음까지 계속 뒤로 밀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가 바쁜 것도 사실이고
내가 서운한 것도 사실일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면
내가 서운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척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상합니다.
이번 일만 서운한 게 아니라
그동안 이해한다는 이유로 넘겼던 마음까지 함께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셋. 내가 멈추면 끝날 것 같을 때
혼자 애쓰는 관계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노력 자체가 힘들 때만은 아닙니다.
잠시 멈춰보고 싶은데
멈추면 정말 끝날 것 같을 때 더 힘듭니다.
이번에는 먼저 연락하지 말아볼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없습니다.
결국 불안해진 내가 다시 메시지를 보냅니다.
답장이 오면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내가 연락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얼마나 오래 이렇게 있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관계를 붙잡게 되기도 합니다.
멀어질까 봐 노력하는데
그 노력 때문에 내가 더 지칩니다.
이럴 때는 일부러 상대를 시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락을 끊고 얼마나 버티나 보는 방식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보다 오해만 키울 수도 있습니다.
대신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는 말해볼 수 있습니다.
나도 가끔은 먼저 연락을 받고 싶고
이 관계를 나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외롭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넷. 관계는 정확한 반반보다 오가는 마음
좋은 관계라고 해서 모든 노력이 정확히 절반씩 나뉘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내가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힘든 시기라면
내가 먼저 연락하고 더 챙길 수도 있습니다.
반대의 순간도 생깁니다.
내가 지쳤을 때 상대가 조금 더 다가와주고
내가 말할 힘이 없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줄 수 있습니다.
오래가는 관계에는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늘 정확하게 반반은 아니어도
한쪽으로만 계속 흐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볼 때
누가 몇 번 먼저 연락했는지만 세어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상대가 귀를 기울이는지?
필요할 때 나를 위해 움직이는 순간이 있는지?
서운함을 이야기했을 때 귀찮아하기보다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마음이 오가는 느낌까지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는 혼자 유지할 수 없습니다.
혼자 애쓰는 관계에서 지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조금 더 이해하면 괜찮을 것 같고 조금 덜 기대하면 편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계속 줄입니다.
먼저 연락해주길 바라지 않고
표현해주길 바라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덜 서운할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기대를 전부 없애야 편한 관계라면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도 한번 봐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관계 안에서 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관심일 수도 있고
다정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힘들 때 먼저 물어봐주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걸 바란다고 해서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에는 원래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같은 깊이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에게
상대는 그 정도의 가까움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픈 사실이지만 그것 역시 관계에서 알게 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혼자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오래됐다면 더 노력하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내가 이미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이 관계에서 무엇을 받고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상대가 그 마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는 한 사람이 계속 당겨서 유지하는 끈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다가가고 때로는 상대가 다가와야 합니다.
한 사람이 잠시 힘이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이 조금 가까이 와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쓰는 마음이 희생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관계라면
계속 좋아하기 위해서라도 나 혼자만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는 붙잡는 힘만으로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음이 있을 때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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